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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비상 연락망

제8장

비상 연락망

회사에 들어온 세 번째 연락은 나를 향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한 번에 펼쳐 읽기

회사에 들어온 세 번째 연락은 나를 향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대표 번호로 나를 찾았다고 했다. 거래처 이름을 말했지만 해당 회사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남겨진 번호로 다시 걸지도 않았다.

오후에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팀장님 일 열심히 도와주시네요.〉

나는 화면을 캡처했다. 손이 생각보다 차분하게 움직였다. 무서움은 캡처를 마친 뒤 왔다. 상대가 내 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도윤은 화면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다른 건?”

“이게 처음이야.”

“집 주소 아는 사람 누구 있어?”

“잠깐.”

나는 손을 들었다.

“나도 방금 받았어.”

그는 입을 다물었다. 질문을 멈추는 데 힘이 드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남 형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가족에게도 상황을 알리라는 말을 듣고 나는 서연에게 전화했다. 회의 중이라고 메시지가 와서 기다렸다. 십칠 분이 길었다.

서연은 내 설명을 끝까지 듣고 먼저 딸을 물었다.

“지우 학교는?”

“그쪽 얘기는 없어.”

“없다는 건 모른다는 거지?”

나는 그렇다고 했다. 도윤에게 지겹도록 하던 구분이었다.

퇴근길에 성호와 건물 앞 동선을 확인하고, 회사에 남아 있는 내 연락처 배포 범위를 알아봤다. 내 번호는 도윤보다 더 많은 문서에 있었다. 비상 연락망. 야간 장애 대응표. 협력업체 담당자 목록. 책임감의 흔적처럼 뿌려 둔 번호였다.

누가 알아냈는지 당장 특정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화나게 했다. 내게도 누군가를 의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설명하기 쉬운 사람을.

나는 도윤을 봤다. 그가 눈을 피했다.

“미안하다.”

“네가 보낸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나는 그 뒤를 듣지 않았다. 책임을 잘못 놓으면 끝이 없었다. 수빈에게 도윤이 했던 말을 이번에는 내가 해야 했다.

집에 가니 서연은 식탁에 휴대전화를 두 개 올려놓고 있었다. 자기 것과 지우 것. 지우는 거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숙제를 했다. 아직 모르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 설명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빠 이야기를 하며 말을 걸면 대답하지 말고 학교나 엄마에게 알려 달라고 했다. 지우는 내가 회사에서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이의 안심은 빨랐다. 서연의 안심은 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직접 알아볼 거야?”

“경찰에 다 전달하고 있어.”

“전달하는 거랑 네가 찾아다니는 건 다르잖아.”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아직 찾아다닌 곳은 카페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러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서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 나중에 별일 아니었다고 하지 말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밤에 도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이제 빠져.”

그가 말했다.

“뭘.”

“내 일 알아보는 거.”

나는 창문에 비친 얼굴을 봤다.

“내 번호로 왔는데 이제 네 일만은 아니지.”

“그래서 더 빠지라는 거야.”

“그걸 네가 정하지 마.”

목소리가 커졌다. 거실에서 서연이 돌아봤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혼자 뭘 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우리가 아는 건 정리해서 넘기고, 모르는 건 물어보고. 그 정도는 같이하자.”

도윤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알겠어.”

친구의 대답은 짧았다. 그 안에 고마움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듣고 싶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들어오자 서연이 물었다.

“둘이 또 싸웠어?”

“응.”

“무서우면 무섭다고도 좀 해.”

나는 소파 끝에 앉았다. 지우가 벗어 놓은 양말이 발에 닿았다. 그제야 무서웠다.


최기범은 서민재를 안다고 했다.

그 말을 직접 들은 사람은 남 형사였다. 회사는 필요한 자료를 요청 절차에 맞춰 전달했고, 우리는 업무 범위와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누군가를 붙잡아 심문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기범은 우리보다 두어 살 많아 보였다. 손등이 거칠었고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그는 통화를 모두 끊었다.

“작년에 두 현장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올해는 정식으로 같이 한 적 없습니다.”

남 형사가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에 왔어요. 일 있냐고.”

“자료를 보여 주셨습니까?”

“현장 일정만요. 투입할 데가 있나 봐야 하니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차츰 알아가는 표정이었다. 일부러 넘긴 것이 아니라며 먼저 말했다. 아무도 아직 일부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기범이 보여 준 것은 요약 문서의 인쇄본이었다. 실제로 배포한 대상과 시점은 별도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정확히 어느 날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 사진과 일정을 찾아봤다.

도윤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나는 그 손을 한 번 봤다. 두드림이 멈췄다.

기범은 화요일 오후에 민재가 작업장에 들렀고, 본인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돌아왔을 때 인쇄물이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누가 그것을 촬영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 사람 여기서 일해 본 적 있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센터요? 예전 야간 공사 때요. 짧게. 출입한 기록은 회사에 있을 겁니다.”

도윤은 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내부 배신자가 아니라, 이미 열린 적 있는 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로 모든 일이 설명되지는 않았다. 오래전 출입 경력만으로 요즘 내 일정까지 아는 이유는 없었다.

면담이 끝난 뒤 기범이 복도에서 우리를 불렀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쓸 줄은…”

도윤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했다.

“알고 계신 건 빠짐없이 전달해 주세요.”

그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도윤이 말했다.

“넌 참 쉽게 괜찮은 얼굴을 한다.”

“괜찮다고 한 적 없어.”

“그래도.”

“저 사람이 일부러 넘겼는지 아직 모르잖아.”

도윤은 문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나만 바보 된 기분이야.”

나는 친구를 봤다. 화가 난 얼굴보다 지친 얼굴이 먼저 보였다.

“아닌 사람 의심했으면 그 사람한테 미안하면 돼. 네가 전부 바보가 되는 건 아니고.”

그는 대꾸하지 않고 차에 탔다.

회사에 돌아온 뒤 도윤은 팀원들을 불렀다. 회사 자료가 외부 경로로 노출됐을 가능성을 확인 중이며, 팀원 누구도 자료를 빼돌렸다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준서는 책상 아래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제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질문을 급하게 했습니다. 불편하셨을 겁니다.”

도윤의 사과는 보고서 같았다. 그래도 사과였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준서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얼굴을 알아봤다. 나도 오래 그렇게 해 왔다.

회의가 끝나자 도윤이 내게 물었다.

“됐냐?”

“뭐가.”

“말했잖아.”

“사과는 나한테 결재받는 거 아니야.”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그 표정 하지 말고. 기다려.”

친구는 기다리는 것을 못했다. 원인이 나오면 장애가 끝나고 사과를 하면 불편함이 끝나야 했다. 사람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기범이 했던 말을 다시 적었다. ‘올해는 정식으로 같이 한 적 없습니다.’ 정식으로. 수빈도 비슷한 말을 했다. 민재는 회사 이름보다 사람 이름으로 일을 구한다고.

나는 종이에 적힌 단어를 도윤에게 보여 줬다.

그는 말했다.

“이건 추측 칸이네.”

“알아.”

“그러면 거기 적어.”

나는 펜을 들었다. 역시 귀찮은 친구였다. 다만 이번에는 귀찮은 덕을 조금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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