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확인서
준법 담당자는 내게 같은 질문을 두 번 했다.
준법 담당자는 내게 같은 질문을 두 번 했다.
수빈이 도윤에게 건넨 봉투를 직접 보았는지.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나는 종이봉투를 받았고 팀원들과 과자를 나눠 먹었다고 했다. 담당자는 그 사실을 적었다.
“개인적인 관계로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놨다.
“감사 인사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알고 지낸 사이인지…”
“제가 아는 건 그날 처음 인사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겁니다. 제가 그분의 과거까지 아는 건 아니고요.”
담당자는 내 문장을 다시 읽었다. 나는 내가 너무 날카롭게 말했는지 생각했다. 동시에 누군가가 나에게 도윤에 관해 묻자 내가 얼마나 빨리 방어적으로 변했는지 깨달았다.
회사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의심의 문장이 먼저 놓이고 내가 그 문장을 지우는 역할을 하는 기분은 불쾌했다.
면담이 끝난 뒤 담당자가 말했다.
“불편하셨다면 이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사실 아닌 걸 확인하면, 처음 의심했던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세요.”
그는 알겠다고 했다.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 정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더 요구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복도에서 도윤을 만났다. 그는 내가 면담을 끝낼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았다.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뭐 물어봐?”
그가 물었다.
“확인할 것들.”
“구체적으로.”
나는 커피를 받지 않고 그를 봤다.
“네가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지금 나한테 같은 면담 한 번 더 하게 하지 마.”
도윤은 내 얼굴을 보더니 컵을 탁자에 놓았다.
“알겠어.”
나는 그제야 커피를 들었다. 뜨거웠다. 도윤은 내가 뜨거운 것을 마시는 줄은 여전히 알고 있었다.
그날 오후 확인 결과가 간단한 문서로 전달됐다. 해당 제보의 부적절한 관계 주장에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도윤은 그 파일을 저장하고 창을 닫았다. 표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끝난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이건 끝났지.”
그의 대답이 맞았다. 하나의 제보가 근거 없다고 정리된 것과 다음 제보가 오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다른 팀 채팅방에 쓴 문장을 지웠다. ‘허위 제보로 밝혀졌대.’ 정확히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과였다. 그 차이가 답답했다. 그런데 도윤의 말투를 싫어하던 내가 이제 문장을 고치고 있었다.
대신 업무와 무관한 소문을 더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썼다. 누군가 알겠다는 표시를 눌렀다. 그것이 얼마나 멀리 전달될지는 몰랐다.
퇴근길에 도윤은 갑자기 미안하다고 했다. 회사 절차 때문에 나를 불려 다니게 해서 그렇다고 했다.
“네가 미안해할 건 따로 있어.”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봤다. 나는 그때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나를 대하는 방식, 대답을 못 하게 만드는 질문들. 입 안에서만 돌던 말이었다.
“다음에.”
나는 말했다.
도윤은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룬 다음이 얼마나 무거워질지 우리는 아직 몰랐다.
흰 승합차는 목요일 저녁에 다시 나타났다.
다시라는 표현은 도윤이 썼다. 나는 첫 번째 차와 같은 차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도윤은 번호판 끝 네 자리가 같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끝 네 자리를 봤다는 말이 없었다.
“언제 적어 놨어?”
“사진 있어.”
사진에는 흔들린 차 뒤쪽이 찍혀 있었다. 숫자 두 개는 읽혔고 두 개는 읽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도윤은 이미 그 두 개를 읽었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일 층 안쪽에서 차를 봤다. 건물 외벽 유리에 반사된 차에는 운전자가 있는지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성호가 밖으로 나가자 차가 움직였다. 누구를 피한 것인지, 신호가 바뀐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성호는 함부로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필요한 장면은 보존해 두고 경찰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도윤은 답답한 듯 입술을 물었다.
“번호를 확인할 수는 있잖아요.”
“확인하겠습니다. 다만 저 차가 그 사람 차라는 건 아직 모릅니다.”
나는 성호가 마음에 들었다. 확실한 것과 확실하지 않은 것을 구분했다. 도윤은 그 구분을 자기에게 적용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흰 차는 통신 설비 업체 차량이라는 답이 왔다. 지하 공사 때문에 정기적으로 들어왔다. 운전자도 확인됐다. 서민재가 아니었다.
도윤은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단체 대화방에 전달하자 짧게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유진이 조용히 말했다.
“아닌 것도 알려 주셔야 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은 소문으로 퍼지고 해명은 개인 대화로 끝났다. 그렇게 남는 것들이 있었다.
금요일에는 준서가 곤란해졌다. 회사 앞 식당에서 누군가 통합운영팀이 맞느냐고 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말했기 때문이다.
“언제 일이에요?”
도윤의 질문에 준서가 날짜를 헤아렸다.
“지난주 수요일쯤이요.”
“쯤 말고 정확히요.”
“카드 내역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때 보고 안 했습니까?”
준서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했다는 이유로 팀장에게 보고해야 하는 직장은 아니었다. 그 말을 내가 대신 했다.
도윤은 나를 봤다.
“지금 상황을 모르세요?”
“그때 준서는 지금 상황을 몰랐어.”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준서에게 나가서 카드 내역을 확인하라고 했다. 도윤은 내가 자기 지시를 끊었다는 얼굴이었다.
문이 닫힌 뒤 내가 말했다.
“질문을 하려면 대답을 할 수 있게 해.”
“내가 뭘 못 하게 했는데.”
“하나 대답하면 다음 잘못이 나오잖아. 그러면 누가 기억을 하겠냐. 틀리지 않을 말부터 찾지.”
도윤은 탁자 위 펜을 반듯하게 놓았다. 그 손등의 흉터가 작게 움직였다.
“네가 이 일을 당해 봐.”
그가 말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도 당하게 할 거냐?”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하지만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도윤은 회의실에서 먼저 나갔다. 점심에는 혼자 사 온 샌드위치를 자리에서 먹었다. 오래 씹었고, 자주 창밖을 봤다. 나는 화가 난 채로 그 모습을 보았다. 불쌍하다는 마음과 화가 난다는 마음이 같이 드는 것이 귀찮았다.
퇴근 직전 준서가 카드 내역을 가져왔다. 수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었다. 남자는 자기 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인 줄 알고 인사했다고 했다. 식당에서 입고 있던 조끼에 거래 업체 이름이 있었다고 했다.
“어느 업체?”
내가 물었다.
“동우인가, 동진인가. 시설 하는 데 같았어요.”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봤다.
입사 후 처음 같이 야근하던 날처럼, 같은 곳에 빈칸이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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