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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관련성

장애는 오전 아홉 시 사십이 분에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사람이 알아차렸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책으로 읽기

장애는 오전 아홉 시 사십이 분에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사람이 알아차렸다. 프로그램이 잘못된 순간과 사람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순간 사이에는 언제나 빈 시간이 있었다. 우리 팀은 그 빈 시간을 줄이는 일을 했다.

한도그룹 통합운영센터 삼 층. 사원증을 찍고 들어오면 유리 벽 너머로 서버 상태판이 보였다. 초록색 원이 여든여섯 개였다. 나는 그중 하나가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고 커피를 내려놓았다.

물류 계열사 정산 승인 요청이 밀리고 있었다. 접속은 됐고, 데이터베이스도 살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숫자들 사이에서 현장 직원들만 일을 하지 못했다. 장애라고 부르기에 가장 불편한 종류였다.

열 시 십육 분에 대기 작업이 빠졌고 열 시 이십 분부터 응답 시간이 내려갔다. 재시작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 때문에 회의가 길어질 것 같았다.

나는 보고 자료 두 번째 장을 띄웠다.

“우선 요청 객체 정리 과정에서 예외가 발생하는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이번 현상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방어 로직을 추가하고—”

“가능성의 근거가 뭡니까?”

강도윤이 물었다.

입사 동기. 교육원 같은 방. 내 결혼식 사회를 봤던 사람. 그리고 삼 년째 내 팀장인 사람.

“장애 시간대에 같은 예외가 늘었습니다.”

“그 예외는 지난주에도 있었잖아요.”

“맞습니다. 다만 오늘은 발생량이—”

“그건 이번 장애하고 상관없잖아요. 관계없는 말씀은 하지 마시고요.”

맞은편에 앉은 정유진이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내렸다. 신입 이준서는 마우스를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도윤과 내가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모르는 척했다.

나는 문장을 삼켰다. 관련이 없다고 확인한 적은 없었다. 관련이 있다고 확인한 적도 없었다. 원인은 모호했지만 결함은 분명했다. 나는 고칠 수 있는 것을 먼저 고치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원인 조치와 예방 조치를 나눠서 말씀하세요.”

“뒤에 나눠 놨습니다.”

“그러면 앞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셔야죠.”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정말로 나눠 놨다. 원인 미확정. 예방 조치 검토. 각각 제목을 달고 색도 달리했다. 도윤은 그걸 보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사과하지는 않았다.

“오늘 열한 시까지 계열사 답변 필요합니다. 원인 확인 안 됐다고만 보낼 수는 없으니까 영향 범위부터 확정해 주세요.”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의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다툰 사람보다 구경한 사람들이 더 예의 바르게 움직였다.

탕비실에서 찬물을 마시고 있는데 도윤이 들어왔다.

“점심 뭐 먹냐?”

나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눌렀다.

“아직.”

“국밥 먹자. 어제 갔던 데.”

도윤은 아홉 시에 날씨 이야기를 하다 열 시에 내 말을 끊고 열한 시에 점심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마음은 아직 회의실에 있었는데, 그는 벌써 국밥집에 가 있었다.

“난 자료 해야 돼.”

“밥은 먹고 해. 먹는 데 삼십 분이면 되잖아.”

삼십 분. 도윤에게는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한 시간이었다.

복도 끝에서 윤석호 부장이 그를 불렀다. 도윤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이 생각보다 늙어 보였다.

책상으로 돌아와 기록을 다시 봤다. 문제의 예외는 장애가 시작되기 전에 늘었다. 하지만 막힌 요청이 다시 풀리기 시작한 뒤에도 계속 발생했다. 무관할 수도 있었다. 아니라고 단정할 만큼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보고서에서 ‘추정 원인’을 지웠다. 대신 ‘확인이 필요한 현상’이라고 썼다. 제목 하나를 고치고 나니 꼭 내가 잘못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십 분 지난 뒤 도윤에게 메시지가 왔다.

〈국밥 포장해 놨다. 탕비실 냉장고.〉

고맙다는 말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고맙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예방 패치 검증 끝나면 올려. 그건 하는 게 맞아.〉

나는 한참 화면을 봤다.

회의에서 그렇게 말해 줬으면 됐을 일이었다.

국밥은 식어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 깍두기가 두 개 들어 있었다. 내가 깍두기를 많이 먹는다는 걸 도윤은 십칠 년째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걔를 싫어하는 건지, 걔 밑에서 일하는 걸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어.”

서연은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둘 다일 수도 있지.”

간단한 대답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위로가 됐다.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도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면을 뒤집어 놓았다. 십 초쯤 지나 진동이 멈췄다. 조금 뒤 단체 대화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다음 날 아침 장애 점검 회의. 여덟 시 삼십 분.

나는 휴대전화를 소파 구석으로 밀었다.

나에게도 악당이 있었다. 남들은 모르고, 본인도 모르는 악당이었다.


서연은 내가 회사 이야기를 시작하면 식탁에 앉았다. 처음에는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서서 듣다 보면 언제 끝날지 몰라서 앉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장애가 난 시간부터 설명했다. 서연은 중간에 국을 데우고 지우의 물병을 씻었다. 나는 아직 도윤이 처음 말을 끊은 대목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원인은 찾았어?”

서연이 물었다.

“그게 아직 모호한데, 관련 있는 부분을 고치자는 말을—”

“당신 얘기랑 원인 얘기는 따로 들어야 되겠네.”

나는 말을 멈췄다. 아내는 국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지금은 친구한테 화났다는 얘기 하고 싶은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하나로 이야기가 짧아졌다.

“나한테만 저래. 다른 사람한테는 저 정도까지 안 해.”

서연은 정말 그런지,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 묻지 않았다. 그 질문을 들으면 또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친해서 더 편하게 하는 걸 수도 있지.”

그녀가 말했다.

“편하면 다 해도 되냐.”

“내 말이.”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아내를 봤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당신도 나한테 회사 얘기할 때 가끔 그래. 내가 대답하면 끝까지 안 듣고.”

나는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하고 싶은 반박은 이미 몇 개나 떠올라 있었다. 나는 그 정도로 끊지 않는다. 당신은 업무를 모르니까. 조언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서.

그 말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국을 먹었다. 식어 가던 국이 다시 따뜻해져 있었다.

지우가 거실에서 물었다.

“아빠, 팀장님이 아빠보다 높아?”

나는 그렇다고 했다.

“친구인데?”

“회사에서는.”

“회사 밖에서는?”

“친구지.”

지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그럼 퇴근하고 혼내면 되겠다고 했다. 서연이 웃었다. 나는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퇴근한 뒤 도윤에게 말한 적도 있었다. 회의에서 사람들 앞에선 좀 조심해 달라고.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회의에서 같은 말을 다른 문장으로 했다. 공개적으로 망신 준다는 내 느낌과 명확히 확인한다는 그의 의도는 늘 다른 칸에 있었다.

밤에 설거지를 하면서 나는 서연에게 물었다.

“친구가 잘되는 걸 내가 못 견디는 건가.”

그녀는 마른 그릇을 정리하다가 나를 봤다.

“그런 마음이 조금 있을 수도 있지. 그렇다고 기분 나빴던 일이 없어진 건 아니고.”

나는 고무장갑 안에서 손을 폈다. 물이 따뜻했다.

누군가 내 편을 드는 방식이 꼭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내는 나보다 잘 알았다. 나는 그날 그걸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했다. 서연은 다녀오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윤에게 메시지가 왔다. 새벽 모니터링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안내였다. 나는 확인했다고 답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밖에는 분리수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도 내가 차장인지 팀원인지 몰랐다. 나는 그 익명성이 좋았다. 플라스틱 뚜껑을 따로 분리하면서 잠깐 아무도 내 말의 근거를 묻지 않는 저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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