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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검은 봉투

첫 번째 봉투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책으로 읽기

첫 번째 봉투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검은색 종이 한 장이 있었다.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크기였다. 받는 사람은 강도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우편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일 층 외부 문서함에서 발견됐다.

총무 담당자가 잘못 배달된 홍보물 같다고 말했다. 도윤은 봉투 앞뒤를 찍고 종이를 다시 넣었다. 그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보험 광고 아니야?”

내가 물었다.

“모르지.”

“내용도 없어?”

“없어.”

그는 더 묻지 말라는 듯 서랍을 닫았다.

그날 저녁 예방 패치 검증 결과가 나왔다. 문제 경로를 막아도 지연은 재현되지 않았고, 경로를 열어 둬도 재현되지 않았다. 결함을 고친 것은 맞지만 장애를 고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보고서에 그대로 적었다. 도윤은 한 줄을 가리켰다.

“재발 방지라는 표현은 빼세요.”

“재발을 줄이는 건 맞잖아.”

“무슨 재발인데요? 같은 장애라는 근거가 없잖아요.”

회의실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존댓말을 썼다. 나는 그게 더 싫었다. 다른 사람이 없는데도 내 자리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럼 결함 개선이라고 쓸게.”

“네. 정확하게요.”

나는 키보드를 세게 쳤다. 도윤은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진동이 세 번 울렸다.

다음 날 검은 봉투가 하나 더 왔다. 이번에는 표창식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도윤의 얼굴만 검게 칠해져 있었다.

그는 곧바로 봉투를 들고 나갔다. 나는 창밖을 봤다. 건물 앞에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직원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 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도윤이 돌아온 것은 한 시간 뒤였다. 남 형사가 함께 왔다. 두 사람은 유리 회의실에서 성호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회의가 끝난 뒤 도윤이 팀 사람들을 불렀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안내드릴 게 있습니다.”

그는 범인의 이름을 말했다. 서민재. 수림공원 사건 가해자. 전화와 메시지, 익명 우편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에 내용을 전달했고, 업무와 관계없는 방문이나 문의가 있으면 직접 응대하지 말라고 했다.

준서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그 사람이 여기 온 거예요?”

“확인은 안 됐습니다.”

“봉투는 어떻게 들어왔어요?”

“일 층은 외부인도 출입 가능합니다.”

도윤은 질문 하나하나를 막힌 문처럼 닫았다. 불안해하지 않게 하려는 것인지, 자기도 불안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유진이 물었다.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도윤은 그 질문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네. 업무에 지장 없게 하겠습니다.”

그 대답 때문에 아무도 더 묻지 않았다.

저녁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붙잡았다.

“왜 말을 안 했냐?”

“확실한 게 없었으니까.”

“나한테 번호 알려 줬냐고 물은 건?”

“누가 알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내가 알려 줬을까 봐?”

“그런 뜻 아니고.”

말은 거기서 멈췄다. 그런 뜻이 아니라는 설명 뒤에는 보통 다른 뜻이 따라와야 했다. 도윤은 층수 표시만 보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니 성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 함께 차까지 가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내 차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다가 도윤의 어깨를 봤다. 양복 어깨선이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집에 와서 서연에게 봉투 이야기를 했다.

“무섭겠다.”

“걔는 무섭다는 말을 안 해.”

“네가 듣고 싶은 말부터 정해 놓고 묻는 건 아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은 도윤에게 자주 해 주고 싶던 말이었다.

밤에 그에게 메시지를 썼다.

〈같이 퇴근할 일 있으면 말해.〉

한참 뒤 답장이 왔다.

〈고맙다. 내일 장애 검증 회의는 열 시로 미뤘다.〉

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고맙다는 말 뒤에도 회의가 따라왔다.


회사를 움직인 것은 협박이 아니라 제보였다.

그룹 윤리 신고 창구에 글이 올라왔다. 통합운영팀 강도윤 팀장이 근무 중 부적절한 개인 관계를 유지하며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실명이 적혀 있었고, 사옥 로비에서 수빈과 도윤이 만나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나는 잘려 있었다. 수빈이 들고 온 봉투와 도윤의 손만 가까이 보였다. 과자 봉투였다. 설명이 없으면 무엇으로든 보일 수 있었다.

준법 담당자는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문장을 도윤은 너무 잘 알았다. 그동안 자신도 수없이 사용했으니까.

“확인할 수는 있죠. 그런데 피해자분을 다시 불러야 합니까?”

도윤이 물었다.

담당자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신 방문 목적과 당시 동석자를 적어 달라고 했다. 동석자라는 말에 내가 불려 갔다.

나는 로비에서 봤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썼다. 정확한 시각은 몰랐다.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 커피를 산 시간을 찾았다. 처음에는 대략 오후 세 시라고 썼다가 세 시 이십칠 분으로 고쳤다.

문서를 내면서 알았다. 도윤이 왜 시각 표기에 매달렸는지. 하지만 그걸 안다고 그날의 모욕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윤 부장은 도윤에게 휴가를 권했다.

“개인적인 일 정리하고 와. 회사가 도울 건 돕고.”

도윤은 정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네가 중심을 잡아야지.”

부장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나가 있으라고 하면서 중심에 있으라고 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회의실 밖에서 그 모습을 봤다.

이틀 뒤 또 다른 제보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도윤이 승인하지 않은 시스템 변경을 숨겼다는 내용이었다. 날짜는 틀렸지만 변경 작업의 이름은 맞았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명칭이었다.

그때부터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도윤은 공유 폴더 접근 이력을 요청했다. 성호에게 게시판 열람 범위를 물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언제 어떤 회의 자료를 받았는지 목록을 만들었다.

“그거 전부 받아서 뭐 하게?”

내가 물었다.

“밖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이잖아.”

“협력사도 알고 계열사도 알아. 안에 있는 사람만 아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확인해야지.”

그는 자기 말이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이 낯익어서 더 불편했다.

오후에 유진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도윤이 최근 사내 게시물을 외부에 전달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물어볼 수는 있죠. 그런데 제가 안 했다고 했더니, 기억을 잘해 보라고 하세요.”

유진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잘 들어가지 않자 손으로 눌렀다.

“제 기억보다 본인 의심이 더 정확한가 봐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변호할 문장이 없었다.

밤 아홉 시, 도윤이 내게 화면을 보여 줬다. 악성 제보에 들어간 작업명과 우리 주간 보고서에 쓰인 작업명이 같았다. 띄어쓰기까지 같았다.

“여기서 나갔어.”

그가 말했다.

“문장이 같다는 거지, 여기 사람이 보냈다는 건 아니야.”

“그럼 누가 보냈는데?”

“몰라.”

“모르면 가능성을 닫지 마.”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 말은 너도 좀 기억해.”

도윤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나는 처음 장애 회의를 떠올렸고, 그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모니터 아래에 내려놓은 표창장이 눈에 들어왔다. 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가져왔던 것을 아직 집에 가져가지 못한 상태였다.

흰 종이 위의 직인이 유난히 붉었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야.”

도윤이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러면 사람들이 뭘 잘못했는지 찾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보자.”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같은 화면을 봤다. 아직 같은 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화면으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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