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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첫 결재

임시 팀장에게 새 명함은 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책으로 읽기

임시 팀장에게 새 명함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직급이 바뀐 것도 아니고 조직장이 정식으로 교체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메일 서명에 업무 대행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순간, 받는 사람들의 질문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검토해 달라고 했고 이제는 결정해 달라고 했다. 예전에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됐고 이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야 했다. 그 차이를 첫 주 내내 배웠다.

협력사 책임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기존 일정에서 사람을 줄이자고 했다.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비용이 줄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가 야간 비상 대응 인원이 함께 줄어드는 것을 봤다.

“그 부분은 유지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상대는 강 팀장도 늘 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도윤이 남긴 이전 회의록을 읽었다. 같은 쟁점이 세 번 나와 있었다. 세 번 모두 인원 유지로 끝났다.

나는 그가 이미 막아 둔 위험을 평소에 보지 못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은 성과보다 배경이 되기 쉬웠다.

그렇다고 팀장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시간이 훌륭해 보이지는 않았다. 같은 회의록에는 상대를 몰아붙이는 문장도 있었다. 확인하기 위해 꼭 저 표현이 필요했을까 싶은 대목들. 나는 필요한 결정과 불필요한 날을 분리해서 읽었다.

저녁에 도윤에게 전화해 몇 가지 확인하려다가 그만뒀다. 대신 회의록 끝에 남아 있는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그는 작년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십 분 만에 정리됐다.

사람 하나가 모든 기억을 보관하는 팀은 편해 보여도 약했다. 나는 주요 결정의 배경을 팀 공유 공간에 모으기 시작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문서를 찾아 이름을 붙이는 일이었다.

유진은 검색어부터 통일하자고 했다. 준서는 문서에 마지막 확인 날짜를 넣었다. 나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 적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조금 느렸지만 내가 없는 날에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요일 오후, 도윤이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 정리 작업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예전에도 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서운했다. 해 보지도 않은 일을 이미 생각했다는 말로 가져가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가 덧붙였다.

“끝내지는 못했어. 네가 해 주면 좋겠다.”

나는 화면을 봤다.

〈하고 있어. 다 같이.〉

답을 보내자 도윤이 알겠다고 했다.

새 명함은 없었지만 내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일은 있었다. 친구가 돌아온 뒤에도 그 정리는 남을 것이다. 그 정도면 임시라는 말이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도윤의 병실에는 다른 세 사람의 시간이 함께 있었다.

창가 첫 번째 침대에는 무릎 수술을 받은 노인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식사를 시작한 날마다 무엇을 먹었는지 가족에게 보고하는 남자가 있었다. 출입문 가까운 침대의 젊은 남자는 밤마다 휴대전화 화면을 보다가 보호자에게 혼났다.

도윤은 그들 사이에서 세 걸음 걷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간호사는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도윤은 천천히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돌렸다. 발을 바닥에 내리는 데 한참 걸렸다. 나는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지시를 기다렸다. 아무 데나 잡으면 오히려 아플 것 같았다.

“팔.”

도윤이 말했다.

나는 팔을 내줬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일어났다. 사무실에서는 키가 비슷했는데 그날은 작아 보였다. 등이 굽고 어깨가 내려가 있어서였다.

우리는 침대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도윤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잘했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내가 듣기에도 아이 다루는 말 같았다.

그가 먼저 말했다.

“별거 아닌데 힘드네.”

“별거 아니면 의사가 시키겠냐.”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웃기지 마.”

“너부터 웃지 마.”

우리는 웃음조차 책임을 나눴다.

어머니는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고 계셨다. 처음에는 호출 버튼을 누르는 것도 망설였는데, 이제는 필요한 것을 적어 두었다가 한 번에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작은 수첩을 쓰는 것을 보고 도윤이 누구를 닮았는지 알았다.

“얘가 어릴 때도 그랬어.”

어머니가 말했다.

“뭐가 안 맞으면 밥 먹다가도 묻고.”

도윤은 눈을 감았다.

“엄마.”

“친구니까 말하지.”

어머니는 내게 도윤이 초등학교 때 운동회 달리기 순서를 바꾸자고 선생님께 따졌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키 순서면 불리한 아이가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듣다가 웃었다. 도윤은 그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고쳤다.

“키 순서가 아니라 번호 순서였어.”

어머니가 손을 저었다.

“하여튼 그거.”

나는 웃다가 그를 봤다. 정말 오래된 성격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나는 밖으로 나왔다. 과일을 가져온 첫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물티슈와 짧은 충전선을 가져왔다. 도윤은 충전선 길이가 짧다고 했다.

“긴 건 발에 걸리잖아.”

내가 말했다.

그는 받아 놓고 더 말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회사 괜찮니?”

나는 괜찮다고 했다가 웃었다.

“많이 바쁩니다.”

“도윤이가 네 걱정을 하더라. 그 자리가 원래 욕먹는 자리라고.”

나는 병실 문을 봤다.

“자기도 많이 먹였으면서요.”

어머니는 뜻을 몰라 잠깐 눈을 깜빡였다. 내가 농담이라고 하자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농담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도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충전선 불편하면 긴 거 사다 줄게.〉

답장이 왔다.

〈써 보니까 괜찮다.〉

나는 그 여섯 글자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써 보기 전에 틀렸다고 하지 않은 것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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