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오수빈
수빈은 우리를 만나기 전에 장소부터 바꿨다.
수빈은 우리를 만나기 전에 장소부터 바꿨다.
도윤은 회사 근처 카페를 제안했다. 수빈은 조금 떨어진 도서관 안 카페를 골랐다. 이유를 묻자 익숙한 데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의자를 고를 때 출입문을 먼저 보았다.
“저는 김도현입니다. 그날 로비에서 잠깐 봤죠.”
수빈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회색 가방 대신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도윤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질문을 적어 왔다. 수빈이 화면을 보는 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컵을 옮기며 말했다.
“오늘은 아시는 것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도 틀리게 짐작한 게 많아서요.”
도윤이 나를 봤다. 나는 모르는 척했다.
서민재는 시설 유지보수와 행사 설치 일을 번갈아 했다. 고정된 회사에 오래 있지는 않았고, 계약 업체 이름보다 현장 사람 이름으로 일을 구했다. 수빈은 그가 우리 회사에 출입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회사 이야기를 하긴 했어요. 큰 회사는 거기서 거기라고. 직원보다 자기가 길을 더 잘 안다고.”
그 말에 도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도 시설 일을 합니까?”
“정확히는 몰라요. 헤어지기 전에는 했어요.”
“최근 연락 내용에 작업 현장 같은 게 있습니까?”
수빈의 손이 컵에서 떨어졌다.
“최근 연락은 안 봤어요. 남겨 둔 건 경찰에 드렸고요.”
도윤은 다음 질문을 하려다 멈췄다. 수빈이 먼저 말했다.
“안 보면 덜 무서울 줄 알았어요.”
그 한마디로 탁자 위의 모든 질문이 달라졌다. 도윤은 전화기를 뒤집었다.
수빈은 만나는 동안 서민재가 길을 잘 외웠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지, 누구와 점심을 먹는지 물었다.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질문이 어느 순간 보고가 됐다고 했다.
“틀리게 말하면 화를 냈어요. 왜 어제랑 다르냐고.”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지 않으려고 컵의 물방울을 닦았다.
수빈은 상담을 받고 있었고, 연락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는 개인 사정을 설명한 뒤 근무 장소를 조정했다. 경찰과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 때문에 회사까지…”
도윤이 처음으로 질문 아닌 말을 했다.
“그 사람이 그러는 겁니다. 수빈 씨 때문이 아니고요.”
나는 도윤을 봤다. 회의실에서 듣고 싶었던 종류의 문장이었다. 책임을 제자리에 놓는 말.
수빈은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울지는 않았다.
우리는 남 형사에게 전달할 내용을 함께 정리했다. 수빈은 민재가 쓰던 업체 이름 두 개를 기억해 냈고, 준서가 말한 ‘동우’는 그중 하나와 비슷했다. 그러나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것이 없었다.
“이건 제가 담당 형사님께 직접 전달할게요.”
수빈이 말했다.
“기억나는 게 더 있으면 저한테 알려 주세요. 제가 한 얘기가 어디까지 전달되는지도 알고 싶어요.”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를 나올 때 수빈은 정문 대신 안내 데스크 쪽으로 갔다. 도서관 직원에게 말을 건 뒤 동료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걸어 나갔다. 스스로 정해 놓은 안전한 순서가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차에 타자 도윤이 말했다.
“내가 너무 많이 물었냐?”
나는 안전벨트를 맸다.
“중간부터는 잘했어.”
“처음에는?”
“면접 같았어.”
도윤은 시동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나는 그 말이 질문 목록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알아. 그런데 사람이 네 일정대로 대답을 기억해 내지는 못하잖아.”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수빈과 동료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두 사람이 건너간 뒤에야 주차장을 나왔다.
단서는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 있었다.
유진은 주간 보고서가 든 폴더 옆에 또 다른 폴더가 있다고 했다. 정식 보고서가 아니라 회의 참석자들에게 나눠 주는 요약 자료였다. 운영팀, 시설팀, 보안실, 협력사 현장 책임자가 함께 보는 자료. 작업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작업명이 여기에도 들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기존 폴더 접근 기록만 보면 안 나와요. 이건 다른 배포예요.”
도윤은 화면을 가까이 봤다. 제보에 등장한 문장은 주간 보고서가 아니라 이 요약 문서와 같았다. ‘정산 연계 이중화 시험’이라는 제목 뒤에 괄호가 하나 빠져 있었다. 우리 내부 보고서에는 괄호가 있었다.
도윤은 안경을 벗었다.
“그럼 밖으로 나갔을 수 있네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어요.”
도윤은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눈짓하지 않았다. 사과할 시점을 대신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어제 물었던 건 제가 성급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유진은 모니터를 본 채로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용서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문서가 외부에 전달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 일이 아니었다. 필요한 항목만 추려 보낸 정식 업무 자료였다. 개인정보도 시스템 접속 정보도 없었다. 누군가는 정상적인 업무 자료를 비정상적인 목적으로 가져다 썼다.
그 차이를 확인하는 데 우리는 사흘을 썼고, 그동안 준서는 점심을 혼자 먹었다.
도윤은 공유 범위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정식으로 올렸다. 내가 개인적으로 업체를 찾아보자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내 일이지만 회사 자료야. 우리가 마음대로 받으면 나중에 다른 문제가 돼.”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이 맞았다.
시설 담당 정태식 과장은 문서 수신 목록을 가져왔다. 그중 한 업체의 현장 책임자가 반년 전 바뀌었다. 이름은 최기범. 도윤은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분이 현장 인력들에게 자료를 다시 배포합니까?”
“작업 시간표는 배포하겠죠. 그건 현장마다 달라요.”
“서민재라는 분 아십니까?”
태식은 모른다고 했다. 잠깐 생각한 뒤, 이름보다 얼굴을 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업무라고 했다.
도윤이 사진을 꺼내려 하자 나는 남 형사에게 먼저 물어보자고 했다. 도윤은 펜을 탁자에 놓았다.
“알겠어.”
그 짧은 대답이 우리가 한 시간 동안 다투지 않은 첫 순간이었다.
오후 늦게 태식이 따로 나를 불렀다.
“강 팀장님 요즘 많이 예민하시죠?”
나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협조할게요. 다만 직원들한테 개인적으로 캐묻는 건 조금…”
“제가 얘기할게요.”
말하고 보니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몰랐다.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팀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이유는 늘 이렇게 달라붙었다.
도윤은 창가에서 통화 중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말했다.
“시설팀에 더 물을 게 있으면 공식으로 해.”
그는 나를 올려다봤다.
“그쪽에서 뭐라고 했어?”
“협조하겠대. 대신 심문하지 말래.”
“그렇게 말했어?”
“아니. 그건 내가 바꿔 말한 거고.”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정확한 것이 가장 무례했다. 나는 그와 비슷해지는 것이 싫었다.
“나도 네 편 들기가 힘들다.”
그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왔다.
도윤은 한참 뒤에 말했다.
“편 안 들어도 돼. 사실만 봐.”
나는 대답했다.
“사실을 같이 보는 것도 편드는 거야. 지금은.”
그는 창밖을 보았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마다 잠깐씩 눈을 멈췄다. 나는 처음으로 그 눈길을 이해했다. 의심은 그가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 도구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COMMENTS · 제6장
오수빈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읽다가 궁금한 점이나 보탤 내용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