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장
나의 악당
수림공원에 다시 간 것은 그로부터 몇 주 뒤였다.
수림공원에 다시 간 것은 그로부터 몇 주 뒤였다.
도윤이 먼저 가자고 했다. 예전처럼 운동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짧게 걷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나는 서연에게 어디로 가는지 알렸다. 도윤도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는 귀찮다고 여겼을 순서였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만났다. 공원에는 유모차를 미는 사람과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아이가 줄을 놓칠 뻔해 어머니에게 혼났다. 모든 소리가 평범했다.
도윤은 예전보다 느리게 걸었다. 나는 처음에는 속도를 맞추려고 애썼고, 조금 뒤에는 잊었다. 말하면서 걸으면 걸음은 저절로 느려졌다.
벤치가 있는 갈림길에서 도윤이 멈췄다. 나는 먼저 묻지 않았다. 그는 그날 사람들의 위치를 짧게 말했다. 여자가 있던 곳, 남자가 서 있던 곳, 신고하던 부부가 다가온 방향.
“뉴스에는 내가 붙잡고 있었다고 나왔는데.”
그가 말했다.
“사실 나는 저쪽으로 못 오게 서 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쉬운 건 아니지.”
도윤은 벤치를 보았다.
“뭘 잘해서 된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왔고 경찰도 왔고.”
나는 병원 앞에서 수정한 보고서를 떠올렸다. 혼자 해결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도윤은 몸을 천천히 움직여 편한 자세를 찾았다. 나는 물병을 건넸다. 그는 조금 마시고 돌려줬다.
“수빈 씨는 수업 다시 다닌대.”
그가 말했다.
“직접 들었어?”
“안부 문자 왔어. 작은 접시 만들었다고.”
그는 사진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내가 보여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생활은 우리가 확인할 사건 자료가 아니었다.
민재와 관련된 절차는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결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우리도 필요한 때마다 협조했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일상을 보류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출근하고 밥을 먹고 다시 회의를 했다.
도윤이 말했다.
“그날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많이 받더라.”
“뭐라고 했는데.”
“모른다고.”
나는 친구를 봤다.
“옛날에는 다시 하겠다고 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지금을 몰랐잖아.”
그는 물병 뚜껑을 잠갔다.
“그래도 사람이 넘어져 있으면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지. 혼자 뭘 하려고는 안 하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영웅의 선언처럼 듣지 않으려고 했다. 두려움을 알게 된 사람이 자기 몸이 다시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었다. 북쪽 출입구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돌아왔다. 도윤은 예전 같으면 한 바퀴를 채웠을 것이다. 그날은 절반에서 돌아서는 것을 패배처럼 여기지 않았다.
공원 밖 편의점에서 우리는 물을 샀다. 도윤이 계산했다. 영수증을 건네받더니 내게 보여 줬다.
“오늘은 네 증인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혼자 편의점에 다녀왔다고 사진을 보냈던 날을 떠올렸다.
“확인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헤어지기 전 도윤은 다음 주 보고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월요일에 하자.”
그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친구를 이해하는 일보다 경계를 정하는 일이 오래 걸렸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날 회사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서연에게 전화했다. 걷고 왔다고, 별일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좋은 날이네 하고 말했다.
나는 창밖의 사람들을 봤다. 누가 누구를 기다리고 누구를 따라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모든 발소리를 위협으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응.”
나는 대답했다.
“좋은 날이야.”
도윤은 결국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됐다.
걸음도 빨라졌다. 계단을 오를 때는 여전히 조심했고, 가끔 수술 부위를 누르며 자세를 바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길을 피하지도 오래 보지도 않으려고 했다. 환자가 아닌 친구로 대하는 데도 서툰 연습이 필요했다.
회사에는 새로운 장애가 생겼고 오래된 장애는 보고서가 됐다. 첫 장애의 원인 조치는 검증을 거쳐 반영됐다. 내가 처음 제안한 예방 패치도 별도 개선으로 남았다.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일이 각각 쓸모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문서는 담담하게 기록했다.
도윤은 여전히 질문이 많았다. 근거를 물었고, 영향 범위를 물었고, 다음 안내 시각을 물었다. 가끔은 필요한 질문을 모욕적인 순서로 했다. 나는 예전처럼 혼자 삼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물으면 내가 안 했다는 말 같아.”
한 번은 회의 중에 말했다.
도윤은 잠깐 멈췄다. 질문을 다시 했다. 다른 날에는 기분이 상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는 다음 날 다시 이야기했다. 한 번의 수술과 한 번의 사과로 사람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유진도 조금씩 의견을 바로 말했다. 준서는 모르는 것을 적어 왔다. 모르는 목록을 들고 온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런 팀이 됐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목록이 서랍 안에만 있지는 않았다.
도윤이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내게 다시 팀장을 맡을 기회가 올지는 몰랐다. 나는 예전처럼 그 자리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부분과 하기 싫은 부분을 구분해서 생각했다. 친구의 자리를 이해한 것과 내 자리를 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금요일 오후, 준서가 검토 자료를 가져왔다. 도윤은 앞부분을 읽고 질문을 했다. 나는 옆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익숙한 문장을 들었다.
“이건 지금 안건하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도윤이 나를 봤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준서가 급히 설명하려 하자 도윤은 손을 들었다.
“일단 제가 끝까지 읽겠습니다.”
나는 다시 모니터를 봤다. 웃음이 조금 났다.
십 분 뒤 도윤이 나를 불렀다.
“도현 씨, 이 검증 결과 수치 하나가 다른데요.”
나는 자료를 받았다. 정말 달랐다. 내가 옮겨 적다가 틀렸다.
“고칠게.”
“다음에는 옮긴 뒤 확인하시고요.”
나는 눈을 감았다.
“확인하다 놓친 거야.”
“그러니까 한 번 더.”
유진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비실로 가는 어깨가 조금 흔들렸다. 나는 그녀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윤은 내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
“왜. 이건 맞는 말이잖아.”
나는 자료를 내려놓았다.
“맞는 말도 네가 하면 유독 짜증 날 때가 있어.”
그가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펜 뒷부분으로 자기 책상을 두드렸다.
“그래도 고쳐.”
나는 웃었다. 결국 고쳤다.
퇴근 무렵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한 번 보고 가방을 멨다. 요즘은 혼자 퇴근하는 날이 늘었다. 나는 그가 먼저 부탁하지 않으면 따라나서지 않았다. 곁에 있다는 것과 늘 붙어 있다는 것은 달랐다.
“오늘 국밥?”
그가 물었다.
나는 서연에게서 온 메시지를 봤다. 지우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오늘은 집에 가야 돼.”
“알았다. 다음 주에.”
그는 바로 대답했다. 붙잡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들었다. 복도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거울 속에 비친 친구는 조금 마른 것을 빼면 예전과 같았다. 나는 그 얼굴이 이제 완전히 다르게 보일 줄 알았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피곤한 사람. 쉽게 자기 기준을 놓지 못하는 사람. 남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질문을 고르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몸부터 내밀었던 사람.
나는 그중 하나를 진짜 도윤이라고 고르지 않았다. 전부 그였다.
일 층에서 문이 열렸다. 도윤은 지하철 쪽으로, 나는 주차장 쪽으로 갔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었다. 나도 손을 들었다.
주차장에 내려가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까 수정한 자료 다시 올렸냐.〉
나는 한동안 화면을 봤다.
그리고 답했다.
〈올렸어. 퇴근했으니까 월요일에 봐.〉
곧 답장이 왔다.
〈알았다.〉
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차 문을 열기 전에 웃음이 났다.
친구는 여전히 나의 악당이었다.
월요일에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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