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수림공원
도윤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넥타이 매는 방법부터 달랐다. 나는 아버지가 매 준 모양을 느슨하게 풀어 목에 걸고 왔다.
도윤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넥타이 매는 방법부터 달랐다. 나는 아버지가 매 준 모양을 느슨하게 풀어 목에 걸고 왔다. 도윤은 교육원 화장실 거울 앞에서 매듭을 두 번 풀었다.
“거기서 더 당기면 숨 막히겠다.”
내가 말했다.
“삐뚤어졌잖아.”
내 눈에는 똑바로 보였다. 도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교육 첫날부터 십 분 늦었다. 그는 지각 사유란에 ‘복장 정리 미숙’이라고 썼다. 나는 옆에서 웃다가 함께 불려 나갔다.
그때는 그런 성격이 재미있었다. 내 등록금 대출 이자를 계산해 주고, 회사 근처 전셋집 계약서를 읽어 주고, 술값을 나누면서 누가 안주를 덜 먹었는지까지 따지는 친구였다.
처음 운영팀에 배치된 날 우리는 같은 야간 근무표에 이름을 올렸다. 새벽 세 시에 출력기가 멈췄다. 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윤은 바닥에 엎드려 선을 확인했다. 빠져 있던 것은 전원도 통신선도 아닌 작은 접지 연결이었다. 나는 그가 기계를 잘 아는 줄 알았다.
나중에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냐?”
“몰랐어. 꽂을 자리 있는데 안 꽂힌 게 그것뿐이라.”
그런 사람이었다. 모르면 눈앞의 것을 하나씩 확인했다.
반대로 나는 전체 모양을 먼저 봤다. 작업이 어디서 막히는지, 사람이 어디에 몰리는지, 어제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찾았다. 도윤은 내 추측을 성급하다고 했고 나는 그의 확인을 굼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같이 야근하면 남들보다 빨리 끝냈다.
그 관계가 오래갈 줄 알았다.
팀장 발령이 난 날 회식은 내가 잡았다. 도윤은 두 잔을 마신 뒤 내 어깨를 쳤다.
“미안하다.”
“뭐가.”
“그냥.”
미안할 일이 생기기도 전에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줄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술잔을 부딪쳤다.
“잘해라. 나 승진 평가나 잘 써 주고.”
우리는 웃었다. 그 뒤로 평가 이야기는 한 번도 농담으로 하지 않았다.
처음 반년은 괜찮았다. 도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야간 보고를 직접 올렸다. 계열사 임원이 소리치면 스피커를 끄고 자기 전화로 바꿔 받았다. 나는 그런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질문을 하기 전에 답을 정해 두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라고 하면 근거를 물었고, 모른다고 하면 왜 아직 모르느냐고 했다. 밖에서 받은 압박을 안으로 옮기는 데 익숙해졌다.
가장 싫었던 말은 ‘도현 씨는 오래하셨잖아요’였다. 우리는 같은 날 들어왔다. 오래한 것은 함께였는데, 실수의 무게를 셀 때만 내 경력이 길어졌다.
목요일 오후, 준서가 승인되지 않은 조회문을 운영 환경에서 돌렸다. 읽기 작업이었지만 부하가 커서 경고가 떴다. 내가 중단시켰다. 도윤은 준서를 부르지 않고 나를 불렀다.
“후배 검토해 주셨다면서요.”
“개발 환경에서 돌리는 걸 봐 줬지. 운영에서 하라고는 안 했어.”
“그 구분도 알려 주셔야죠.”
“알려 줬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복도에 선 채로 같은 질문이 세 번 돌았다. 문 안에서 준서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 때문에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준서한테도 물어봐.”
도윤은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퇴근할 때 준서가 따라왔다.
“차장님, 제가 설명드릴게요.”
“설명은 내일 하고. 다음엔 실행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준서는 미안하다고 세 번 말했다.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그 세 번이 모두 나를 향한 말인지 생각했다.
휴대전화 사진 정리를 하다가 교육원 사진을 봤다. 젊은 도윤이 내 옆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그때도 이마에 지금과 같은 주름이 있었다. 우리가 변한 것인지, 보는 자리가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은 평소처럼 공원 운동을 갔다 왔다고 했다. 집과 회사 사이에 있는 수림공원이었다. 회사 지하 체력단련실이 공사 중이라 요즘은 거기서 걷는다고 했다.
“혼자 걸으면 심심하지 않냐?”
유진이 물었다.
“혼자가 편하죠. 누구 속도 맞출 일도 없고.”
나는 모니터를 보며 혼자 웃었다. 그 말만큼은 도윤답게 정확했다.
그날 저녁, 혼자가 편하다던 친구가 낯선 사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중에 수없이 되짚게 될 일이었다. 그가 십 분 늦게 출발했더라면. 운동화 끈을 한 번 더 맸더라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더라면.
그러나 도윤은 늘 신호를 지켰고, 정해 놓은 시간에 걸었고, 이상한 소리가 나면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날 일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도윤이 과장하는 줄 알았다. 그는 과장을 싫어했지만, 누구나 자기 몸에 생긴 일에는 조금씩 너그러웠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유진이 대화방에 지역 뉴스 링크를 올렸다. ‘공원 폭행 제지한 시민, 추가 피해 막아.’ 얼굴에는 흐림 처리가 돼 있었다. 그런데 운동복이 낯익었다. 회사 체육대회 때 나눠 준 남색 바람막이였다.
준서가 물었다.
〈팀장님 아니세요?〉
답이 한참 없었다.
나는 도윤에게 전화했다.
“너냐?”
“뭐가.”
“공원.”
“아, 그거.”
마치 편의점에서 우유를 산 일처럼 말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뉴스보다 짧고 어수선했다. 도윤이 공원 북쪽 산책로를 내려오는데 벤치 옆에서 여자가 넘어졌다. 처음에는 발을 헛디딘 줄 알았다. 여자가 일어나려 하자 남자가 팔을 잡아 다시 끌어당겼다.
“휴대전화 내놓으라고.”
여자가 싫다고 했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빼앗고 나무에 던졌다. 도윤은 그때 멈췄다.
“손 놓으세요.”
남자는 도윤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우리끼리 일이니까 가세요.”
여자가 그 말을 부정했다.
“우리끼리 아니에요. 헤어졌어요.”
도윤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신고했다. 그제야 남자가 그를 돌아봤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했다. 도윤은 나중에 그 사실을 자꾸 말했다. 술에 취한 사람의 돌발 행동이라고 이해할 구석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남자가 도윤의 전화를 치려다 어깨를 밀었다. 도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벤치를 잡았다. 여자는 그 틈에 산책로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도윤은 따라가라는 말을 했다가 남자의 두 번째 밀침을 받았다.
마침 운동하던 부부가 다가왔다. 한 사람은 계속 신고 전화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 곁에 섰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도윤과 남자는 벤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뉴스가 말한 ‘제압’ 같은 것은 없었다.
“무서웠겠다.”
내가 말했다.
“경찰 금방 오더라.”
대답 대신 도착 시간을 말하는 버릇. 도윤다운 회피였다.
남자의 이름은 서민재였다. 피해 여성은 오수빈. 두 사람은 이미 헤어진 사이였다. 수빈은 그날 자신의 물건을 돌려받으러 나갔다고 했다. 사람이 있는 공원이면 괜찮을 줄 알았다고.
월요일에 도윤의 손등에는 밴드가 붙어 있었다. 팀 사람들은 차례로 다가와 물었다. 무용담을 기대한 준서에게 도윤은 신고가 먼저라고 말했다. 유진에게는 뉴스에 얼굴 안 나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영웅 되셨네요.”
내가 말했다.
“놀리지 마.”
“팀장님 정도면 범인한테도 관련성 따지셨겠는데.”
유진이 웃음을 참느라 기침했다. 도윤은 내 얼굴을 보다가 픽 웃었다.
“관계없다고 가라더라.”
우리 모두 잠깐 웃었다. 나는 이상하게 그 웃음이 반가웠다. 오래전에 같은 새벽을 버티던 두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 회의가 시작되자 도윤은 내 자료의 시각 표기부터 물었다. 서버 기록은 초까지, 현장 접수는 분까지만 나와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걸 나란히 놓으면 동일 시점으로 보이잖아요.”
나는 수정하겠다고 했다. 손등의 밴드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는 저 손이 구원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또 하나의 수정 지시였다.
그날 오후 수빈이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 회사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일 층 로비에서 만났다. 나는 커피를 사러 내려갔다가 우연히 보았다. 회색 가방을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연락처 알아내서 죄송해요. 경찰분이 직접 알려 주신 건 아니고, 제 연락처 전달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도윤은 괜찮다고 했다. 수빈이 내 쪽을 보자 동기라고 소개했다. 팀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단한 친구 두셨네요.”
수빈이 말했다.
나는 도윤을 봤다. 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손등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렇죠.”
나는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는 아니었다.
수빈이 돌아간 뒤 도윤은 종이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작은 과자가 들었다.
“팀 사람들이랑 먹어.”
“너 먹으라고 준 거잖아.”
“혼자 어떻게 다 먹냐.”
나는 봉투를 받았다. 그때 로비 밖 도로에 흰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택배 차량처럼 보였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건물이었다. 그런 차를 기억할 이유는 없었다.
오래 뒤 우리는 그 차가 그날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려고 서로의 기억을 의심하게 된다. 그때 내가 실제로 본 것은 차 한 대였는지, 사건을 안 뒤에 만들어 낸 장면인지 끝내 자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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