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일반병실
경찰서에서 나는 종이컵 물을 세 번 마셨다.
경찰서에서 나는 종이컵 물을 세 번 마셨다.
손이 마른 것이 아니라 입이 말랐다.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단순한 질문일수록 정확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날붙이를 꺼내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손에 있는 건 봤습니다.”
“그전에는요?”
“가방을 떨어뜨리는 걸 봤습니다. 거기서 꺼냈는지는 못 봤습니다.”
남 형사는 내가 말한 것을 확인하며 적었다. 내가 추측으로 메우려는 부분에서는 다시 물었다. 본 것인지, 나중에 들은 것인지.
처음에는 의심받는 기분이 들었다. 곧 알았다. 내 기억을 다른 사람의 기억과 섞지 않게 하는 과정이었다. 나를 믿는다고 해서 내가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도윤이 내 앞에 섰다고 했다. 나를 밀어 냈고 그 직후 다쳤다고 했다. 친구가 나 대신 맞았다는 말을 쓰고 싶었지만, 남 형사는 실제 움직임부터 적었다. 그 의미는 따로 판단될 것이라고 했다.
민재는 자신도 공격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목소리가 커졌다. 남 형사는 민재의 주장이 그대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현장 기록과 목격자, 다친 상태를 함께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회사에서 계열사 직원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일이 남의 서류에서는 아직 확인 중인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강했다. 평일 점심이었다. 사람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세상이 우리 일을 모르고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운했다.
서연이 데리러 와 있었다. 차에 타자 그녀가 내 무릎을 봤다. 약을 바르고 새 붕대를 붙였다. 나는 아프다는 말을 처음 했다. 그제야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두 시간쯤 잠들었다. 꿈에서는 복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내가 밀면 저쪽에서 다시 열렸다. 눈을 떴을 때 손바닥이 아팠다. 주먹을 쥐고 자고 있었다.
도윤의 상태는 큰 변화 없이 관찰 중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하니 잠깐 눈을 떴다고 했다. 내 이름을 불렀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눈을 떴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식이었다.
저녁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주는 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잠시 뒤 작업 관련 질문이 유진에게 왔고, 유진은 그 질문을 자기 선에서 해결했다. 나중에 알려 준 덕분에 나는 쉬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내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밤에 도윤의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했다. 그가 잠깐씩 대답한다고 했다. 많이 피곤해해서 오래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 왔었냐고 묻더라.”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베란다 문을 닫았다.
“네. 곧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 서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은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고 찾았다는 말이 나를 다른 방식으로 울렸다.
나는 휴대전화 메모에 한 줄을 적었다.
‘가방에서 꺼내는 것은 보지 못함.’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적었다. 그런데 그 아래 자꾸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나를 밀어 냈다.’
그 문장은 적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일반병실로 옮겼다는 연락은 사고 닷새 뒤에 왔다.
나는 병원 복도를 걸으며 과일 바구니를 산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윤은 아직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손에 든 바구니가 점점 무거워졌다.
병실에는 침대가 네 개 있었다. 도윤은 창가 두 번째에 누워 있었다. 다른 환자의 텔레비전에서 예능 프로그램 웃음소리가 났다. 나는 그 평범한 소음이 반가웠다. 여기는 적어도 사람이 웃는 곳이었다.
도윤은 나를 보자 손가락을 조금 들었다.
“뭘 그렇게 샀냐.”
목소리가 얇았다.
“네 어머니 드시라고.”
“나 못 먹는 건 알고?”
“알아.”
우리는 거짓말을 알아도 넘어가 줬다.
어머니가 잠깐 식사를 하러 나가고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도윤은 얼굴이 많이 꺼져 있었다. 환자복 목선이 헐렁했다. 사무실에서 늘 반듯하게 앉던 사람이 상체를 세우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어떠냐.”
내가 물었다.
“아파.”
그가 대답했다.
짧고 정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가 물었다.
나는 무릎을 가리켰다.
“긁힌 정도야.”
“손은?”
“좀 붓고.”
“검사받았고?”
나는 웃었다.
“받았어. 보고서 제출할까?”
도윤도 웃으려다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일어나 간호사를 부를까 했지만 그가 손을 저었다. 웃으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다시 앉았다. 농담에도 몸 상태를 살펴야 했다.
잠깐 뒤 그가 말했다.
“잡혔지?”
“응. 경찰에 넘겼어. 조사 중이야.”
“그 뒤에…”
“회사 쪽은 정리하고 있어. 수빈 씨한테도 알려 드렸고.”
도윤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는 그가 다음 질문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물었다.
“네가 안 다쳤으면 됐어.”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나를 위해 다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남은 사람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고 싶지 않았다.
“너는 다쳤잖아.”
도윤은 천장을 봤다.
“보였어.”
“뭐가.”
“네가 넘어지는 게.”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그다음은 잘 모르겠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친구는 영웅의 대사를 준비해 두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넘어졌고, 그쪽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간호사가 들어와 상태를 확인했다. 도윤은 아픈 정도를 숫자로 말했다. 내가 아까 물었을 때와 다른 대답이었다. 필요한 질문에는 필요한 방식이 있었다.
의료진은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수술 상처와 몸 상태를 함께 봐야 했고, 경과에 따라 계획이 달라질 수 있었다. 한 달 넘게 입원할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내가 아는 ‘삼십 일’과 병원에서 말하는 삼십 일은 크기가 달랐다.
도윤은 회사에 전달할 서류를 물었다. 나는 대신 확인하겠다고 했다.
“네 일이나 해.”
그가 말했다.
“네가 내 팀장이니까 이것도 내 일이야.”
내 대답에 그는 잠깐 나를 봤다. 눈가가 조금 움직였다.
병실을 나가기 전 도윤이 나를 불렀다.
“도현아.”
나는 돌아봤다.
“그날 전화 안 끊은 거, 잘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살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내가 잘한 것 하나를 골랐다. 그게 도윤이 할 수 있는 위로였을 것이다.
복도에 나와 과일 바구니의 리본을 보았다. 쾌유를 빕니다. 이미 적혀 있는 문장이라서 다행이었다. 내 말로 쓰라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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