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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공백의 목록

제12장

공백의 목록

보안실의 소회의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누군가 숨길 곳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바깥을 볼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마지막 수정 2026-11-06 · 한 번에 펼쳐 읽기

보안실의 소회의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누군가 숨길 곳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바깥을 볼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날 나는 후자가 더 답답했다.

성호가 정리한 자료에는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이 가려져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범위만 보자는 뜻이었다. 도윤은 처음부터 이름을 묻지 않았다. 대신 반입 시간과 작업 목적을 봤다.

익명 봉투가 발견된 날, 외부 문서함에 물품을 넣고 간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러 봉투를 들고 들어왔고, 그중 하나를 따로 넣었다. 얼굴은 가려졌고 신체 특징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민재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손에 들린 회색 조끼가 보였다. 입고 있지 않고 접어서 들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모르겠네.”

도윤이 먼저 말했다.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웠다. 모르겠다는 말이 드디어 정확한 답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사건별로 자료가 없는 부분을 적었다. 첫 전화는 녹음되지 않았다. 첫 봉투가 들어온 시각은 정확히 몰랐다. 흰 차는 무관했다. 식당에서 준서를 만난 사람은 아직 특정하지 못했다. 문서 배포 시점은 확인됐지만 촬영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빈칸이 많았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선명해졌다.

나는 봉투에 붙은 수신인 표기를 봤다. 강도윤 팀장. 운영센터 삼 층. 사내 게시물의 소속 표기와 달랐다. 게시물에는 통합운영팀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다. 봉투에는 오래전 건물을 부르던 방식이 쓰여 있었다.

“현장 사람들은 아직 센터 삼 층이라고 합니까?”

내가 태식에게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건물 이름이 바뀌어도 오래 일한 사람들은 예전 표현을 썼다. 의미 있는 차이일 수도, 별것 아닌 습관일 수도 있었다.

도윤은 추측 칸에 적었다. 예전 출입 경험. 현장 내부 호칭. 최근 자료 접근. 세 가지가 한 사람에게 겹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원인 보고서 같다.”

내가 말했다.

“원인 보고서 맞지.”

“사람인데.”

도윤은 펜을 멈췄다.

“그래서 안 맞는 게 많네.”

그때 남 형사가 전화를 했다. 민재가 회사 주변에 접근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정황을 확인했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추가로 진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신고가 멈춰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도윤은 대답을 하다가 내 쪽으로 전화기를 기울였다. 나도 함께 듣도록 했다. 나는 그 작은 행동을 기억했다. 예전 같으면 통화를 끝내고 자기 해석을 전달했을 것이다.

수사팀은 서로 다른 제보가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는지 확인 중이었다. 민재가 주변 사람에게 일을 알아봐 달라고 연락한 사실도 나왔다. 그러나 일을 구한 것과 협박을 위해 출입한 것은 구분해야 했다.

우리는 진술 날짜를 잡았다. 도윤은 회의 시간을 옮겼다. 이번에는 사유를 개인 일정이라고만 적고,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설명했다.

금요일 아침 팀 회의에서 그는 말했다.

“제 일 때문에 업무 일정이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 급한 연락은 도현 차장님과 유진 과장님 두 분께 나눠 주세요.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문장을 보며 약간 놀랐다. 도윤이 일을 혼자 쥐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보기 드물었다.

회의가 끝나자 그는 나를 따로 불렀다.

“그런데 어제 회신한 영향 범위 숫자, 합계가 안 맞아.”

나는 눈을 감았다.

“어디.”

그가 화면을 보여 줬다. 한 행이 빠져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수정하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조금 나아지는 것과 귀찮지 않게 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윤 부장은 우리의 정리 자료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회사에서 수사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돼.”

그 말 자체는 맞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외부에 괜히 알려져 봐. 좋은 일 하다가 회사 이미지가…”

도윤이 말을 끊었다.

“알려지는 게 문제입니까, 직원이 협박받는 게 문제입니까?”

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옆에서 의자를 바로 앉았다. 회사에서 누군가 내 대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시원함보다 다음 상황을 걱정하게 됐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잖아.”

“저도 회사 자료 임의로 본 적 없습니다. 필요한 건 절차대로 요청했습니다.”

도윤은 문서를 덮었다. 더 설명하면 공격받을 것이 늘어날 것처럼 보였다.

부장은 결국 직원 보호를 위한 지원을 재확인했다. 외부 연락 대응 창구를 총무로 모으고, 당분간 도윤의 야간 단독 근무를 조정하기로 했다. 실제로 필요한 결정이었다. 우리는 그 결정을 얻기까지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회의실을 나오자 도윤이 말했다.

“속 시원하지?”

“겁나는데.”

그는 나를 봤다.

“네가 부장한테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내 말에 그는 처음으로 웃었다. 짧았지만 진짜 웃음이었다.

오후에 준서가 휴가를 냈다.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도윤은 이유를 묻다가 멈추고 승인했다. 준서는 자리에 돌아와 한참 가방을 정리했다. 나는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걸었다.

“요즘 많이 힘들지?”

준서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 문 앞에서 말했다.

“제가 말 잘못해서 누구 의심받을까 봐요.”

나는 대답을 고르느라 잠깐 늦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면 돼. 기억이 바뀌면 바뀌었다고 하고.”

“팀장님이 정확히 말하라고 하셔서.”

“정확한 거랑 자신 있게 말하는 건 달라.”

그 말을 하며 나도 배웠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목소리가 단단한 사람을 믿었다.

준서가 떠난 뒤 나는 도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준서의 병원 사유는 묻지 말자고 덧붙였다. 도윤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내가 무슨 괴물 같냐.”

그가 말했다.

나는 앉지 않고 대답했다.

“그럴 때가 있어.”

도윤은 눈을 내렸다. 나는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말하는 거야.”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

나는 웃지도 못했다.

“너한테 처음부터 말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십칠 년 동안 친구였다는 사실이 때로는 대화를 돕기보다 막았다. 너도 알겠지.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그런 말들이 설명 대신 쌓였다.

저녁에 도윤은 준서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내용을 보지 않았다. 준서가 다음 날 출근해 도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을 보고 뭔가 오갔다는 것만 알았다.

그날 남 형사는 민재가 우리에게 접근한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했다. 관련자 조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연락이 오면 즉시 알려 달라고 했다. 우리는 회사 일정과 가족 동선에 관한 노출을 줄였다. 특별히 멋있는 일은 없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리고 다시 확인했다.

퇴근길에 도윤이 물었다.

“너는 나랑 왜 아직 친구냐?”

나는 차 문을 열다 말고 돌아봤다.

“아직은 국밥 사 주니까.”

그는 코로 웃었다.

“고작 그거냐.”

“깍두기도 두 개 주고.”

우리는 차에 탔다. 더 깊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그것으로 됐다. 어떤 날에는 농담이 사람을 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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